드디어 다시 읽은 데미안. 헤르만 헤세를 좋아하고 데미안을 제일 좋아하는 책으로 꼽으면서도 정말 내가 허영이 아닌 진심으로 이 책을 좋아하는 게 맞을까에 대한 의문을 가진 채 다시 읽었다. 그래서 더더욱 한 문장도 허투루 읽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꼭꼭 씹어 내 나름대로라도 이해하지 않으면 넘어가지 않았다. 활자를 읽는 걸로 만족하는 건 이미 한 번 해 본 책이니까. 결과는? 여전히 제일 좋아하는 책이라는 타이틀을 지켜냈다. 문장이 섬세하고 세밀하고 아주 촘촘하다. 밀도가 높은 문장들이었다. 문장 자체만 아니라 내용에서도 마찬가지다.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하는데, 갑자기 친구가 나한테 니가 왜 헤르만헤세 좋아하는 지 알 것 같다고, 헤르만 헤세 말 많아서 너랑 잘 통하겠다고 했던 게 떠오른다.ㅋㅋㅋ ⠀
이분법적으로 나뉘어 있었고 흑백이 명백했던 어린 시절, 그러나 살아갈수록 선과 악 혹은 빛과 어둠으로는 세상이 나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을 이해하고자 사람들은 여러 방식으로 사유하고 이해하고 정당화하고 이름을 붙이고 규정짓는다. 때로는 그것을 타인에게 맡기고 그의 생각을 따라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두려워하고 그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연대하고 집단을 만들고 내부와 외부를 규정한다. ⠀
데미안은 헤르만헤세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외부의 세계들을 수용하게 되었던 과정을 적어 놓은 것 같다. 더불어 자기 자신, 즉 내부에 집중하는 과정. ⠀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 그 말들이 흥미롭고 재미있고 즐겁고 통찰을 주는 사람이 있다. 헤르만 헤세는 내게 그런 존재 같다. 그의 시선과 상념의 서술이. ⠀
많은 사건들이 있고, 그걸 겪고,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생각들을 접하고 그 세계를 이해하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도 기꺼이 그러할 나에게 여전히 좋은 책이었다.
⠀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한테 편리한 대로 자기를 정당화하려 하지.”
“누군가가 두렵다는 건 나를 다스리는 힘을 타인에게 맡겨 버렸기 때문이야.”
“우리는 흔히 개인의 한계를 너무 좁게 책정해 버리는 경향이 있소. 우리는 우리가 개성 있다고 일컫고 다른 것과 판이하다고 인정하는 것만을 개인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당신이 단순히 자신의 내부에 세계를 지니고만 있는지 혹은 그것을 의식하고 있는지에 따라 대단히 큰 차이를 가지오.”
“자기 자신의 운명을 발견하는 것이며, 그 운명을 자신의 내부에서 송두리째 그리고 온전하게 끝까지 지켜 내는 일이다. 그 외의 모든 것은 일부일 뿐이며, 도피하려는 노력이고, 대중의 이상 속에 숨으려는 재도피이자 순응이고, 자기 자신의 마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사람은 흔히들 자기 자신과 사이가 좋지 않을 때 두려움을 느끼지. 그들은 결코 자기 자긴에게 귀의하지 않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는 거야. 내부의 알지 못하는 것에 두려움을 품은 자들의 공동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