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있음!!
오랜만에 읽은 한국 소설. 민음사 TV의 추천으로 읽게 됐는데, 책을 잡은 그 날 다 읽었을 만큼 흡입력 있고 흥미롭다. 초반에 공포가 너무 현실적이라서 실제로 기분이 좀 서늘했다. 직장에서도, 무이에서도. 새삼 현대인은 정말 많은 것들을 아웃소싱하고 있구나 생각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타지에서는 핸드폰만 없어도 장르가 갑자기 스릴러로 바뀌는 것이다. 바뀐 것은 나 하나밖에 없음에도. 소설 내내 전환이 매끄러워서 오히려 더 기묘한 느낌을 줬다. 이게 현실인가 상상인가 생각하면서 읽게 했다. 소설의 내용을 폭력적으로 압축하자면 단순하다. 흔한 재난 영화 같다. 그러나 묘사와 디테일이 특별하게 만든다. 오히려 럭의 존재를 없애고 다른 인물의 스토리를 더해서 엮었더라면 조금 특색있었지 않았을까 아쉽다.
재난 여행이라는 아이디어는 특색있었다. 재난 여행이 팔리는 이유인 책임감과 교훈, 안도감과 우월감, 살아있다는 확신과 이기적인 위안 같은 것들이 현실적이라서 더. 후반부에, 당연히 꿈일 줄 알았는데 현실이라서 조금 놀랐다. 어쩌면 당연하고도 진부한 결말이었을 수도 있겠다. 잊고 있었던 복선을 회수해서 좋았다. 조금 진부했지만.
후에 해설에서 사람들이 더 이상 미래를 믿지 않을 때 묵시록은 유토피아를 대체한다. 점차 통제 불가능하다는 것 자체에 매혹된다. 그러므로 재해는 지금, 이곳의 사람들이 가진 집단적 상상력이 가닿기 가장 알맞은 이미지가 된다. 재난은 불가항력적이고 예측 불가능하며 무자비하지만 자연스럽다. 예측 불가능한 미래가 상품이 되고 재난을 소비함으로써 사람들은 불안을 털어 낸다. 는 항목이 와 닿았다. 현대인들은 무엇이든 소비 가능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 같다. 그래야 그게 손에 잡히니까. 이미지를 소유하고 소비하는 것으로 무지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려 한다고. 비슷한 이야기가 밤의 여행자들에도 들어있지 않나 싶다. 결국 ‘진짜 재앙’, ‘진짜 공포’ 앞에서는 무력해지지만.